Exhibition


회화적 보기를 위한 행위


— 안소연 (미술비평가)



  1. 캔버스 뚫기

유지영의 캔버스는 처음부터 뚫려 있었다. 처음부터라니, 이 말이 얼마나 황당하겠냐마는 내가 본 바로 회화 지지체(support)로서 그가 사용한 캔버스는 결코 평평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이차원의 평면성을 관습적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회화가 이미지와 질료를 평면 “위에” 지탱시킨다는 전제 보다는 그것을 평면 “안에” 담고 있다는 자신의 가정을 증명해 보려는 듯 임의의 실험군을 계속해서 등장시켰다. 그는 이미 두 번의 개인전 《엎지른 물》(2018, 레인보우큐브)과 《One After Another》(2019, 전시공간)에서 동시대적 회화의 조건을 (재)탐구한다는 명분을 설정해 놓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관계식을 겹쳐보거나 조건을 이항하는 사고 실험”을 감행해 왔다.[작가노트 참고] 비약적이고 임의적인 망상에서 출발한 그의 회화 지지체에 대한 실험은 캔버스 프레임 내부를 뚫는 삼차원적 시도로 모아졌다.

그는 액체나 시간, 생각 등 유동적이며 연속적인 흐름을 지닌 것들을 삼차원의 현실에 호명하고 고정시켜 놓기 위한 몇몇 형식적 장치들을 참조해 그것을 회화와 견주는 작업적 방법론을 구축해 왔다. 이를테면, 애초에 분절되거나 고정할 수 없는 액체, 시간, 생각 등을 분절하여 재현하는 일련의 체계로서 컵, 시계, 원고지 등의 매우 구체적인 형식적 “틀”을 선택하여, 그는 그것을 회화의 캔버스 지지체와 중첩시켜 보려 했다. 여기서, 따로 분절시켜 고정해 놓을 수 없는 일련의 존재가 어떻게 구체적 형태로 현실에 존재할 수 있는가를 살피는 과정과 대조하여 회화가 캔버스에 이미지와 질료를 고정시키는 형식 논리를 추론해 보려는 기본적인 가설이 밝혀진다.

첫 번째 개인전 《엎지른 물》에서는 물(내용)과 컵(형식)의 관계에 주목해 “컵 속의 물”과 “엎지른 물” 사이의 형식적 당위성을 끊임없이 되물었다면, 두 번째 개인전 《One After Another》에서는 다양한 그리드 구조를 탐색하면서 캔버스 및 이미지의 형태 결정에 따른 의미의 구조화를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유지영은 캔버스의 내부를 구멍 내는 일에 한결같이 몰두했다. 이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의 유학 시절 석사 청구전에서 발표한 작업 〈A Little Artificial Arrangement in Her Garden〉(2017)에서도 발견되는 특징이다. 그는 실제 전시 공간의 벽에 이미지를 붙여 놓고 그 앞에 임의의 형태 윤곽선을 따라 구멍 뚫린 흰 색 캔버스를 겹쳐 놓았다.

캔버스를 뚫는 유지영의 행위는 회화 지지체에 대한 양가적 규명을 제시한다. 하나는 캔버스의 평면성에 가려진 그리드의 공간적 효용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캔버스 표면의 불확실한 경계로서의 구멍—이것은 유지영이 현실의 어떤 체계를 참조해 뚫어놓은 구멍을 말하지만, 천의 직조 상태를 환기시키는 것이기도 하고 이미지 간의 경계를 은유하는 것이기도 하다—을 회화적 조건으로 갱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진 유리컵에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구멍 뚫린 캔버스에 이미지를 쌓을 수 없게 마련인데, 그는 그 구멍을 또 다른 그리드로 전환시켜 삼차원적인 것들을 회화적 환영으로 옮기는 마술적인 실험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인다.


2. 이미지 쌓기

유지영은 많은 모티프를 사용한다. 달걀, 컵, 시트러스 과일 등을 주로 다루는데, 그것을 석고로 캐스팅 하거나 사진 이미지로 작업에 사용한다. 그는 캔버스를 뚫는 급진적인 행위를 시도하면서도 동시에 달력이나 원고지 등 선형적인 배열의 체계를 캔버스 평면에 중첩시키는데, 이러한 양가적 특성이 규명된 회화 지지체 “안에” 유지영은 여러 차원으로 변형된 이미지들을 배치한다. 예전 작업 중 〈Bric-à-Brac〉(2019)를 보면, 유지영은 회화의 지지체와 이미지들의 실체를 복잡하게 교차시켜 놓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어떤 것이 이 숱한 이미지들을 지탱해 주는 지지체이고, 또 어떤 것이 온전하게 회화적 공간을 구성하는 이미지들인지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일련의 정황들에서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컵과 액체, 시계와 시간, 언어와 생각 등의 관계를 예로 삼아 회화 지지체로서의 캔버스와 회화의 내용으로서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이미 회화의 표면에 도사리고 있는 회화적 오류의 사태일지도 모른다. 달걀과 컵과 시트러스 과일 같은 모티프는 그러한 회화적 오류의 타당성을 암시하는 단서들이다. 예컨대, 그가 흰 색 석고로 실물을 캐스팅해서 종종 회화의 공간에 배치하는 달걀의 경우, 마치 프랙탈(fractal) 구조를 연상시키듯 달걀 껍질의 둥근 표면이 흰자와 노른자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유지영은 이미지를 관통하는 지지체의 압도적인 극대화로 본 것 같다. 시트러스 과일이나 컵에 담긴 액체의 형태에서도 비슷한 정황을 볼 수 있다. 요컨대 회화의 캔버스 지지체 안에 배열되어 있는 이미지들이 또 다른 형식을 반복적으로 생성시키는 것이며, 그 역도 성립한다. 구멍 난 텅 빈 캔버스들의 중첩된 이미지처럼 말이다. 

이러한 회화적 관계는 적어도 유지영에게 있어서 도리어 회화 지지체와 이미지의 관계를 갱신하여 새롭게 관계 맺도록 한다. 그의 첫 개인전 《엎지른 물》은 회화 지지체에서 이미지가 빠져나간 경계의 모호함을 보여줬다. 언뜻 스티커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그의 〈Template of Hope〉(2018)는 형식과 내용, 즉 캔버스와 이미지의 분리에 있어서 그 경계에 잔해처럼 발생하는 모호한 겹침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구멍 뚫린 캔버스들을 벽에 붙여 놓음으로써, 또 다시 그가 모색했던 회화적 환영을 가로지르는 회화적 공간의 실체를 다시 상상하게 한다.


3. 벽에 붙이기

유지영의 설명에 따르면 세 번째 개인전 《Cupboard》(2021, 디스위켄드룸)는 “회화적 연쇄 구조인 ‘이미지-지지체-전시공간’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장소인 ‘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배열의 문법과 교차해 보며 회화의 효용성을 묻는 목적으로 기획”됐다.[전시 기획서 참고] 이미지와 지지체의 관계를 살펴온 과정에서 그 둘이 서로 교차되며 이탈하는 지점에 주목해, 그는 실제 “공간”을 회화 지지체와 이미지에 대한 환경으로 다루려는 듯하다.

《Cupboard》는 말 그대로 사물의 배열에서 출발해 전시의 디스플레이 상황을 함의하는데, 그것이 동시에 주거 공간의 관습적인 배치와 중첩돼 이미지와 캔버스와 벽의 연결점을 명확하게 환기시켜준다. 이를테면, 유지영은 큰 화면의 지지체를 매개로 벽과 이미지 사이를 연결해 주는데, 그가 늘 탐구해 왔던 회화의 그리드 “공간”은 벽을 가득 채우는 선반이나 장식적인 인테리어의 배치로 한결 구성적인 맥락을 갖게 됐다. 욕실, 주방, 거실 등 실내 공간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캔버스 안에 옮겨온 듯한 인상을 풍기는데, 유지영이 여기서 주목해 보고자 했던 것은 주거 공간의 기능적인 배치를 참조해 그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캔버스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재배치 할 수 있는 회화의 가능성이었을 테다.

그것이 가능한가? 유지영은 첫 개인전에서부터 “뚫린 컵”이라는 형태의 오류를 인식하여, 도리어 규범적인 형식이 해체되었을 때 가시화 되는 매체적 특성에 주목했다. ‘뚫린 컵에 물을 담을 수 있을까?’하는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담을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삼차원적 현상을 답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그는 회화 지지체로서의 캔버스를 뚫고 그것이 이미지를 담을 수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던 것 같다. 《Cupboard》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처럼 보이는데, 다시 “벽”으로 되돌아간 회화의 유령 같은 출현을 상기시킨다.

유지영은 실내 인테리어 같은 장면을 포토샵으로 그려 그것을 에스키스 삼아 그대로 대형 캔버스에 옮겨 그린다. 포토샵 이미지 중에서 그는 자신이 설계한 대로 어떤 것은 물감을 쌓아올려 이미지를 완성하고 또 어떤 것은 입체적인 오브제들을 변형시켜 화면에 올리거나 붙인다. 그의 캔버스는 애초에 그리드가 수없이 중첩된 “공간”이며 그것은 2차원적 그리드와 3차원적 그리드의 경계가 모순처럼 뒤엉킨 회화적 공간을 창출한다. 그리고 그것은 집 안의 벽면과 완전히 일치하는 접촉면을 가진 채, 삼차원적 시공간에서 시각적인 평면성을 과시하는 회화적 시도를 재차 강조한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그가 석고로 캐스팅한 달걀처럼 형태의 표면과 윤곽을 극대화 한 조각적 개입을 통해 회화적 경험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이어진다. 유지영은 삼차원적인 사물들을 석고 캐스팅 하거나 윤곽만 남겨놓고 도려내든가 아니면 사진 이미지로 전환하여 회화 지지체와 결합시키기를 즐겨 했는데, 그러한 시도가 자꾸만 벽으로 다가가려는 회화의 충동을 더욱 부추긴 모양이다. 정면성의 시각 경험이 유독 그러한 실제 재료의 실제 효과에서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