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기 좋은 그림
— 이상엽 (독립기획자)
Cupboard
2021. 11. 12. - 27.
디스위켄드룸, 서울
‘두기 좋은 그림’은 어떤 그림일까? 보통 두기 좋은 그림이라 함은 특정 장소나 공간을 가리켜 ‘~에 두기 좋은 그림’으로 불리며, 또 어떤 공간에 두어도 무리 없이 주변과 잘 어우러지는 그림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두기 좋은 그림이 아닌, ‘무언가를’ 두기 좋은 그림을 떠올려 본 적이 있을까? 두기 좋은 그림 앞에 장소가 아닌 물체가 붙는 경우를 말이다. 유지영의 개인전 《Cupboard》는 ‘~을 두기 좋은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커보드(cupboard), 찬장을 뜻하는 전시제목이 미리 귀띔해 주듯, 그림에 무언가를 두기 좋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유지영의 그림 위에 무언가 놓여 있다.
유지영의 세 번째 개인전 《Cupboard》는 우리의 일상을 형성하는 주거 공간, 곧 집에서 발견되는 구성 체계를 회화와 회화 주변을 이루는 구성 체계와 견주어 바라보는 시도로서의 전시이다. 유지영은 주거 공간에서 보관·수납과 정리·배열을 위해 사용하는 수납장(서랍, 선반, 찬장, 책장 등)의 외형과 논리를 작업에 불러들여 ‘사용하기’와 ‘보기’ 사이의 용도를 겹쳐 바라본다. 이에 따라 회화적 연쇄 구조인 ‘이미지-지지체-전시 공간’은 ‘사물-선반-주거 공간’과 상응하게 된다. 우리가 주거 공간에서 필요한 사물을 선반에서 꺼내 사용하듯이, 작가는 같은 논리로 사용자로서 관객이 전시 공간에 방문해 이미지라는 물건을 회화라는 선반에서 꺼내 사용한다고 여긴다. 《Cupboard》는 앞선 논리를 보다 가시화한 형태의 작업들로 선보인다. 일련의 작업은 평면 지지체(캔버스나 목재) 위 물감을 덧입히는 방식 외에, 지지체에 선반과 손잡이를 달고 수납장을 만들며 그 주위로 실제 사물을 캐스팅한 오브제를 두는 방식을 병행한다. 또한, 내용상 각 작업은 부엌이나 욕실 등 거주 공간 내에서도 특정 장소를 암시하거나, 아침/저녁으로 깃든 거주 공간 속 생활 패턴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한편 집의 구성 요소와 정렬 체계를 빌려 회화의 역할과 사용 가치, 정렬 시스템을 돌아보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실제로 회화에 선반을 달고 오브제를 두는 등 그 논리를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의도 너머까지 도달하게 된다. 회화는 비유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사용 가능한 선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유가 현실이 되면 그에 따른 관계망도 새로이 짜인다. ‘커보드cupboard'라는 단어가 한 몸 안에 두 존재(컵cup과 대board)를 담아내듯, 전시 《Cupboard》는 이중의 용도, 차원, 논리, 세계 사이에 얽혀 있다. 기능과 장식, 사용과 감상, 2차원과 3차원, 회화와 오브제, 주거 공간과 전시 공간 등 대립하는 두 개의 항이 다수로 존재할 때 이 조합이 발생시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훨씬 많아진다. 예컨대 누군가 《Cupboard》에서 마음에 꼭 드는 작품 한 점을 사서 자신의 집에 가져다 두는 경우, 그 사람은 작품에 맞는 액자를 맞춘 후 벽에 걸어 둘까? 그 사람은 그림에 붙은 선반을 집안의 여타 선반과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용도로 사용할까? 사물을 본떠 만든 오브제와 실제 사물은 나란히 놓이게 될까? 기능 없는 오브제는 자리를 박탈당하고 사용 가능한 사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까?
무수히 떠오르는 물음과 함께, 혹 이 전시가 회화를 감상하는 데 혼란만 가져다줄 뿐이라 생각된다면 다음의 문장으로 그 답을 대신해 보면 어떨까? “어떤 소통체계의 경우에, 그 체계의 목적은 그저 평형이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체계가 존속할 수 있으려면 무언가 새로운 말할 거리를 언제나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생각하자. 어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기만 한다면, 그 대화는 더는 진전이 없을 것이다. 하나의 체계로서 대화가 존속하려면 무언가 새로운 말할 거리를 찾아내야 한다.”1 유지영은 회화 체계를 잇는 새로운 말할 거리로 ‘두기 좋은 그림’을 가져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짜 나간다.
1
레비 R. 브라이언트, 김효진(역), 『객체들의 민주주의』, 갈무리, p.200.
유지영의 세 번째 개인전 《Cupboard》는 우리의 일상을 형성하는 주거 공간, 곧 집에서 발견되는 구성 체계를 회화와 회화 주변을 이루는 구성 체계와 견주어 바라보는 시도로서의 전시이다. 유지영은 주거 공간에서 보관·수납과 정리·배열을 위해 사용하는 수납장(서랍, 선반, 찬장, 책장 등)의 외형과 논리를 작업에 불러들여 ‘사용하기’와 ‘보기’ 사이의 용도를 겹쳐 바라본다. 이에 따라 회화적 연쇄 구조인 ‘이미지-지지체-전시 공간’은 ‘사물-선반-주거 공간’과 상응하게 된다. 우리가 주거 공간에서 필요한 사물을 선반에서 꺼내 사용하듯이, 작가는 같은 논리로 사용자로서 관객이 전시 공간에 방문해 이미지라는 물건을 회화라는 선반에서 꺼내 사용한다고 여긴다. 《Cupboard》는 앞선 논리를 보다 가시화한 형태의 작업들로 선보인다. 일련의 작업은 평면 지지체(캔버스나 목재) 위 물감을 덧입히는 방식 외에, 지지체에 선반과 손잡이를 달고 수납장을 만들며 그 주위로 실제 사물을 캐스팅한 오브제를 두는 방식을 병행한다. 또한, 내용상 각 작업은 부엌이나 욕실 등 거주 공간 내에서도 특정 장소를 암시하거나, 아침/저녁으로 깃든 거주 공간 속 생활 패턴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한편 집의 구성 요소와 정렬 체계를 빌려 회화의 역할과 사용 가치, 정렬 시스템을 돌아보고자 한 작가의 의도는 실제로 회화에 선반을 달고 오브제를 두는 등 그 논리를 가시화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의도 너머까지 도달하게 된다. 회화는 비유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사용 가능한 선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비유가 현실이 되면 그에 따른 관계망도 새로이 짜인다. ‘커보드cupboard'라는 단어가 한 몸 안에 두 존재(컵cup과 대board)를 담아내듯, 전시 《Cupboard》는 이중의 용도, 차원, 논리, 세계 사이에 얽혀 있다. 기능과 장식, 사용과 감상, 2차원과 3차원, 회화와 오브제, 주거 공간과 전시 공간 등 대립하는 두 개의 항이 다수로 존재할 때 이 조합이 발생시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훨씬 많아진다. 예컨대 누군가 《Cupboard》에서 마음에 꼭 드는 작품 한 점을 사서 자신의 집에 가져다 두는 경우, 그 사람은 작품에 맞는 액자를 맞춘 후 벽에 걸어 둘까? 그 사람은 그림에 붙은 선반을 집안의 여타 선반과 다를 바 없는 동일한 용도로 사용할까? 사물을 본떠 만든 오브제와 실제 사물은 나란히 놓이게 될까? 기능 없는 오브제는 자리를 박탈당하고 사용 가능한 사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할까?
무수히 떠오르는 물음과 함께, 혹 이 전시가 회화를 감상하는 데 혼란만 가져다줄 뿐이라 생각된다면 다음의 문장으로 그 답을 대신해 보면 어떨까? “어떤 소통체계의 경우에, 그 체계의 목적은 그저 평형이나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체계가 존속할 수 있으려면 무언가 새로운 말할 거리를 언제나 찾아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생각하자. 어떤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하기만 한다면, 그 대화는 더는 진전이 없을 것이다. 하나의 체계로서 대화가 존속하려면 무언가 새로운 말할 거리를 찾아내야 한다.”1 유지영은 회화 체계를 잇는 새로운 말할 거리로 ‘두기 좋은 그림’을 가져와 계속해서 이야기를 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