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틈
구나연 (미술비평가)
2024

시간과 공간이라는 주제를 회화의 문제 의식으로 가져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철학과 과학을 비롯한 모든 분과 학문의 화두이고, 인간이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자연의 기본 바탕이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 동안 시간과 공간의 시스템은 세계에 대한 총체적이며 복잡한 구조로 기능해 왔고, 기술의 심화와 더불어 갈수록 더욱 광범위하고 정밀한 매커니즘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시간의 공간으로부터 회화의 특수성을 견인하는 일은 그것이 모두의 문제이자 매우 난해한 문제이므로, 과감한 용기와 까다로운 접근 방식을 갖는다. 유지영의 관심은 이 확고한 시공의 시스템을 지탱하는 전체와 부분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들이다. 체계는 거대한 전체로 존재하지만, 조밀한 부분을 통해 기능한다. 부분과 전체는 상호 연결되고 의존하면서 체계를 만든다. 그렇다면 시스템의 전체와 부분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고, 그 관계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유지영의 작업은 이 넓은 물음에 대한 회화적 탐구이며, 전체와 부분의 틈에서 발생하는 팽팽한 긴장과 깊숙한 균열에 관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체계의 형상들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나 달력, 시간의 단위와 같이 보편적이고 엄격한 질서의 매개들이다. 이 관습적인 시간의 원칙 안에서, 유지영의 작업은 개별적 시간을 공간화하고, 시공의 개념에 대한 시각적 요소를 구축한다.

어두운 밤이 되면 잠을 자고, 날이 밝으면 일어나 활동을 하는 것은 비단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동물과 식물 역시 공유하는 자연의 리듬이다. 이 점에서 생명체는 일종의 시계이며, 우리의 생 또한 태어나 늙어 죽음에 이르는 시계와 같이, 한시도 멈춤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다종다양한 시간의 존재가 문명의 시스템에서는 시간을 가리키는 매체로 수렴된다. 시간 시스템은 시간에 대한 인식을 숫자로 바꾸어 계량화 한다. 예컨대 우리는 밤이 되어 자는 것이 아니라 오후 11시가 되어 잠을 자는 것이 되고, 하루는 식물이 이슬을 맺으며 광합성을 시작하여 어둠에 잎을 접는 것이 아니라 오전과 오후로 이루어진 24시간이 된다. 한편, 전체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시간의 수리화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지평을 매우 동시적이고 명료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역사, 현재의 진단, 미래의 전망은 시간의 수리적 병렬과 단절을 통해 모두의 시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 안에서 개별의 시간은 결코 포용될 수 없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소유하면서, 각기 다른 시간을 보낸다.

이처럼 절대적인 시간성에는 필연적으로 상대적인 시간이 내포되며, 상대적 시간들은 반드시 절대적인 시간에 종속된다. 유지영은 절대적인 시간과 상대적인 시간, 표준의 시간과 개별의 시간에 관하여 어느 한편으로 비판적인 견지를 표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 두 대비 안에서 시간의 존재 방식은 언제나 결핍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의문을 품는다. 이는 그가 체계화되고 규율화된 시스템으로서의 시간을 스스로 필요로 하고, 매일 자신만의 견고한 시간표를 만들어 이에 맞춰 생활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 체화된 시스템의 계획과 예측은 현재라는 시제에 대한 확실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시계 바늘이 향할 시침, 내일을 가리키고 있는 달력의 숫자는 텅 빈 용기와 같이 아무 것도 담겨 있지 않다. 불확실성의 지표에 다름 아닌 미래는 순간으로 나타나는 현재에야 비로소 그 윤곽을 드러낸다. 이는 기억과 망각이 작동하는 과거 시제의 불확실성과도 관련된다. 현재라고 지칭할 수 있는 시간의 역동성에 비해 수리화된 시간은 언제나 독립적인 경계를 지닌 경우에만 유효하다.

유지영의 <캘린더> 시리즈(2019, 2023)는 일년에 해당하는 열 두 패널로 구성된 작업이다. 거대한 그리드의 행렬 가운데 하루를 가리키는 숫자가 하나의 ‘용기’(container) 혹은 하나의 선반(shelf)처럼 되어 한 달을 구성한다.  그는 숫자로 명기된 일, 월, 년도의 단위화가 “절단”이라는 매커니즘을 통해 기능하는 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간의 계기를 하루라는 단위로 절단하고 하루 옆에 다른 하루를 병치하는데, 이 연쇄적 구조로 시간을 지각하는 일은 지속이나 연속이 아닌 단절의 경험에 가깝다.” 달력의 구조를 칸칸이 나뉘어진 입체로 구성한 이 시리즈는 그의 전작인 <Colander>(2021-2022)에서 열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용기’로 부조리한 가구의 형상을 만들었던 것과 논리적 연장선을 갖는데, 우리의 습관을 재촉하는 체계를 빌어 그에 관한 의문과 결여를 제시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캘린더> 시리즈에서 ‘달력’이라는 병렬형 컨테이너 구조를 통해 시간의 끊김 없는 상태와 수많은 변수를 담아낼 수 없는 체계의 한계를 보여준다. 숫자로 표기된 하루는 결코 지속을 지시 할 수 없으며, 각기 다른 삶 또한 반영할 수 없다. 오히려 체계는 지속과 반영을 완고히 차단하며 보편성을 유지한다. 유지영은 평면이 아닌 입체가, 단절이 아닌 은유가 된 <캘린더> 형식으로, 시간의 지속과 자의식의 반영이 가시화된 회화를 보여준다. 캘린더를 구성하는 숫자의 행렬은 무수한 매일의 질량이 담길 용기로 변화하여 그 어떤 시간도 집어넣을 수 있도록 개방한다. 또 달걀이 식품이 되기 위해 규칙적인 틀에 담겨 개개의 생을 규격화 하는 것에서 착안하여, 어떤 빈칸에는 알의 형태가, 또 어떤 달에는 알의 윤곽선 형태가 하루 하루를 지칭한다.

특히 이 변화무쌍한 <캘린더>는 단절과 지속, 상수와 변수의 운용을 통해 구조화 된다. 각 칸의 날짜와 그 사이에 빼곡히 적힌 글자는 언어체계에 대한 알레고리로서의 평면이며, 비어 있거나 알의 모양으로 채워진 하루의 빈칸들은 개별적 시간의 변수로 채워질 입체로 나타난다. 유지영의 작업에서 평면과 입체의 관계는 체계와 변화, 전체와 부분이라는 상호 교차를 통해 독특한 형식적 어휘로 작동한다. 이것은 회화라는 절대적 평면에 대한 인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즉 회화의 평면에서 비롯된 공간적 확장의 탐구가 입체로 발현되고, 그렇게 평면과 입체의 교차 속에서 시간과 공간에 대한 확고한 메타포가 발생한다. 평면과 입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 차원의 역동은 시간의 개념이 회화를 통해 공간이 되는 과정이고, 또한 회화적 공간이 시간으로 작용하는 경로이다. 따라서 <캘린더>에서 회화의 영토, 의미를 발현하는 텍스트의 장소, 보편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숫자의 표기는 ‘평면’을 공유한다. 그리고 자의식의 영토, 지속적인 운동의 장소, 개별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표상은 ‘입체’를 필요로 한다. 유지영의 작업에서 시간과 공간은 평면과 입체의 공존과 충돌 가운데 기묘한 시스템으로 현시하는 것이다.

2020년이라는 해는 어쩌면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지구적 공포를 표상하고 있는지 모른다. <Clock>(2020-)시리즈는 유지영이 팬데믹 시기 경험한 시간에 관한 것이면서, 시간이라는 주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작업이다. 당시 영국에 거주하던 그는 셧다운 시기,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자신의 공간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는 시간의 박동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데, 오직 시간만 있을 뿐 시간의 운동성이 휘발된 당혹감은 시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환기하게 된다. 팬데믹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가장 친숙했던 어플리케이션의 아이콘을 바탕으로 한 <Clock> 시리즈는 이중의 구조를 띤다. 파도가 칠 때마다 달라지는 땅과 바다의 경계, 그리고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구름의 모양과 같이 고정할 수 없는 물질적 흐름이 작품의 실루엣으로 드러나고, 여기에 시계의 운동이 겹쳐진다. 해안과 구름이라는 자연의 변화에서 비롯된 유연한 외곽선은 각각의 견고한 객체로 나타난다.

<Clock> 시리즈에서 뚜렷한 경계, 정확한 계측을 요구하는 시간 시스템에 견주어, 서로 맞물리고 추동하는 카오스를 거듭하는 자연의 역동성 간의 대비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활력을 상실한 채 시간의 무신경한 시침과 앱 아이콘만으로 세계를 경험하던 시기의 절박했던 시간에서 비롯된다. 특히 오직 하나의 시계 바늘만을 지닌 채, 다른 속도로 회전하는 이 회화적 시계는 시스템의 시간이 가리킬 수 없는 구부러진 시간, 개별적 자아의 시간을 가리키며 끝없이 움직인다. 해안 모래의 색채와 질감을 지닌 제스모나이트 판은 몰아치는 바다와 그때마다 움직이는 경계의 모양을 머금고, 이것이 무한히 평면 위를 공회전 할 것 같은 시계 바늘과 교차되면서, 시간은 흐르고, 스미고, 섞이는 액체와 같은 시간, 곧 회화로 실현 가능한 시간이 된다. 이는 앱 아이콘 모양에서 착안한 형태와 더불어, 액체와 같은 물감의 속성이 회화로 현현하는 것과 관련된다. 유지영에게 회화는 평면의 문제임과 동시에 회화의 고유한 질료가 지닌 물질적 본성을 지닌 시간의 이미지로 동화된다. <Clock> 시리즈는 세계의 규정할 수 없는 상태를 규범적인 체계의 형식으로 품되, 회화의 흐름으로 이를 재차 풀어내며 시간에 관한 기묘한 분기점을 만든다. 즉 자연이 지닌 물질의 속성을 회화의 언어와 결합해 나가는 그의 시도는 해안을 휩쓸고 지나가는 파도의 끝자락과 같이 고체와 액체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고, 현재 속에 존재하는 과거와 미래의 교차를 목격하게 만든다.

따라서 유지영의 작업은 회화의 물질적 속성과 질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그 중 하나가 2023년 갤러리 기체에서 진행된 개인전 ≪사이-횡단≫에서 보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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